2026 OCI YOUNG CREATIVES 서도이 개인전 《정복되지 않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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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CImuseum 조회 58회 작성일 26-06-12 11:01
정복되지 않은 세계
사라진 이야기, 남겨진 이미지
우리는 종종 이미 지나간 것으로 여겨지는 과거가 실제로는 전혀 끝나지 않은 채 현재의 감각과 인식 속에 머물러 있음을 경험한다. 사건은 사라지지만 그것을 둘러싼 감각과 이미지, 그리고 설명되지 않은 서사들은 형태를 바꾸어 지속된다. 이 전시는 바로 그러한 잔여로서의 과거,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에서 출발한다. 서도이의 작업은 특정 사건의 재현이나 기록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경험을 하나의 고정된 사실로 남겨두기보다, 다시 배열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다룬다. 작가에게 경험은 완결된 것이 아닌 언제든 다른 방식으로 읽힐 수 있는 열린 구조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실제로 있었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서사로 조직되고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는가이다.
작가는 이러한 문제를 ‘역할놀이’라는 개념을 통해 확장한다. 삶이 하나의 각본이라면 그것은 수정 가능하며 다른 결말로 이어질 수 있다. 주어진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위치로 이동하는 순간, 동일한 사건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서도이는 그리기라는 방식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며, 이러한 접근은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해온 의례적 구조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가 과거에 경험한 제의와 반복적인 의식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호출하는 방식이었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감각은 이후 작업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의례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경험하게 만드는 장치이며, 이야기와 믿음은 그 장치를 작동시키는 핵심 요소이다.
이번 전시 《정복되지 않은 세계》는 이러한 의례적 감각과 서사적 구조를 회화로 확장한 결과물이다. 특히 ACT3로 이어지는 작업은 이전의 퍼포먼스적·서사적 실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지 자체가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에 집중한다. 여기서 회화는 더 이상 어떤 사건을 설명하거나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적으로 호출하는 매체로 작동한다.
작가의 화면에 등장하는 나무, 숲, 별, 팽이와 같은 상징들은 특정한 의미를 지시하기보다 인류가 오랫동안 공유해온 보편적 의미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작가 개인의 경험과 맥락이 중첩된 형태로 작동한다. 별이 가능성을, 숲이 두려움이나 과거를 환기하듯, 이러한 도상들은 일정한 의미의 층위를 지니는 동시에 반복과 변형을 거치며 하나의 장면을 형성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고대의 신화나 벽화를 연상시키며 시간의 층위를 지운 채 원형적인 상태로 되돌아간다. 흑연으로 스케치를 한 뒤 유화를 스머징하는 방식은 이러한 감각을 더욱 강화하며, 화면의 표면은 마치 오래된 기억의 흔적처럼 불확실하고 미끄러운 상태를 유지한다. 이때 회화는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라졌거나 애초에 실체가 없었던 이야기들을 시각적 경험으로 환원하는 과정이 된다. 관람자는 화면 속에서 명확한 서사를 읽어내기보다, 파편화된 이미지와 상징들 사이에서 스스로 연결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각자의 기억과 감각을 호출하는 하나의 장으로 확장된다.
존재하지 않지만 강하게 체험되는 세계를 회화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서도이의 작업은 힐마 아프 클린트의 회화와 중요한 접점을 형성한다. 다만 이 연결은 형식적 유사성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이미지로 번역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위에 성립한다. 아프 클린트가 영적 체험을 바탕으로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질서를 회화로 전달하려 했다면, 서도이에게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초월적 차원이라기보다 경험 이후에 남겨진 심상과 서사의 층위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외부에 실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축적되고 변형된 감각과 기억의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 이때 회화는 어떤 진리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라진 것들을 다시 감각적으로 구성하고 새로운 심상을 촉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작가는 최근 작업에서 이러한 과정을 서로 다른 개념의 교차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인과적 구조로 바라보며, 그 안에서 주어진 경로를 다시 뒤집는다. 예측 가능한 결과로 이어질 것 같았던 흐름은 어느 순간 단절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시작점이 생성된다. 이때 등장하는 ‘중성자별’의 이미지는 이러한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별이 스스로 붕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하듯, 작가는 과거의 서사를 해체하고 다른 방식으로 다시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를 완전히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 이상 단일한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하나의 사건이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는 것을 거부하고, 다양한 가능성의 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정복되지 않은 세계》라는 제목은 바로 이러한 태도를 함축한다. 여기서 ‘정복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동시에, 하나의 해석이나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세계는 단일한 의미로 설명될 수 없으며, 완전히 이해하거나 소유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서도이의 작업은 이러한 불가능성을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전환한다. 세계가 완전히 정복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그것을 상상하고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이미지들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다시 조직하는 힘을 갖는다.
이 전시는 결국 하나의 제안으로 읽힌다. 과거를 고정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것을 다시 쓰고 다시 그릴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존재하지 않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 회화는 그 가능성이 가장 밀도 높게 응축되는 장소이며, 우리는 그곳에서 비로소, 아직 정복되지 않은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홍이지(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작가 약력
학력
2017 인천대학교 조형예술학부 서양화과 학사 졸업
주요 개인전
2026 정복되지 않은 세계, OCI미술관, 서울
2025 Time Axis, 콤플렉스, 서울
2020 Dixit Dominus Domino Meo – 도미노, 숭배자들의 게임, 0 갤러리, 서울
2018 죽은 민영이의 49재, space xx, 서울
죽은 민영이의 장례식, 예술공간 땅속, 서울
주요 단체전
2025 MICRO HISTORY, 스페이스 소, 서울
마중물, 김리아갤러리, 서울
2024 소품물(小品物) Part. 2, 오온, 서울
Pieces of Us, 도잉아트, 서울
A Page of Roots, 경기예술인의집, 수원
2018 몽테 소사이어티: 오늘을 그리다, 조선대학교미술관, 광주
적응방산, 대안공간 눈, 수원
생체실험실 2018, 룬트갤러리, 서울
2016 모두의 이빨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공간 듬, 인천
황홀경, 더텍사스프로젝트, 서울
수상 / 선정
2026 OCI YOUNG CREATIVES, OCI미술관
2019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 (사)여성·문화네트워크
2018 최초예술지원 창작발표형 선정, 서울문화재단
레지던시
2017 Westfjords Residency, 아이슬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