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톱시아 현기증 Photopsia Vert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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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엘리펀트프리지 조회 52회 작성일 26-06-16 21:37
어긋난 시선
어느 저녁, 거실 소파에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말이 없습니다. 한 사람은 끊임없이 릴스 영상을 넘기고, 다른 한 사람은 새로운 관심사를 찾아 화면을 표류합니다. 몸은 한 공간에 머물고 있지만, 정신은 각자 전혀 다른 가상 세계를 떠돌고 있습니다. 주말의 카페를 가득 채운 연인들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시선이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을 때, 남겨진 다른 사람의 갈 곳 없는 시선은 멍하니 창 밖을 향합니다. 이런 시선의 어긋남은 현대 도시의 가장 흔한 일상적 풍경이 되었습니다.
박현진 작가는 바로 이 낯설고도 익숙한 순간들을 포착했습니다.
그의 사진은 강렬한 초록, 찌르는 듯한 분홍, 시린 느낌의 파란색이 뒤섞여 있고, 화면 전체에는 모래 바람 같은 노이즈가 자욱합니다. 우리가 아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사진의 전통적인 문법을 거부한 이런 표현은 작가 자신이 실제로 경험했던 '광시증(Photopsia)'에서 출발했습니다. 광시증은 눈의 과부하로 인해 빛이 없는데도 눈앞에서 섬광이 번쩍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밤낮없이 쏟아지는 자극적인 디지털 화면에 중독되어, 정작 눈 앞의 진짜 현실과 고유한 색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 왜곡된 빛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인물들은 어딘가 공허해 보입니다. 분명 한 화면 안에 존재하지만, 그들의 눈길은 단 한 번도 서로를 향하지 않습니다. 아름답고도 강렬한 색 뒤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관계의 단절과 존재의 소외가 서늘하게 숨어 있습니다.
작가는 화면 속 어긋난 시선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눈이 과부하되면 세상이 왜곡되어 보이듯, 우리의 관계 역시 그렇게 해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과, 당신은 정말 함께 있는 걸까요.
이정훈(독립기획자, 엘리펀트프리지 대표)
